프놈펜에서의 내 생활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주 무분별하게 살고 있지는 않았구나.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아마 직장을 가지고 내 돈을 가지면서 부터였던 것 같다. 많지 않은 벌이였지만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남을 돈을 벌었다.
내가 원하는 생활을 위해서라면 주저 없이 돈을 쓰는 사람이고 싶었고, 그러려면 내가 원하는 생활이 무엇인지부터
고민을 해봐야 했다. 확고해야 망설임이 없을테니까.
그 이후로 5년도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선명해진 것은 없다.
다만 돈이 아깝지 않은 것과 돈을 쓰기 싫은 곳의 구분은 점차 생겨나고 있다.
요즘들어서는 '나'로 더 투명하고 정직해지려면 내 공간을 만들고 혼자 살아보는 경험이 필요하단 생각을 자주 한다.
온전한 나의 생활을 꾸려보고 싶다는 바람.
(물론 경제적 이유와 편의 때문에 차일피일하고 있지만^^)
온전한 내 생활.
해본적 없지만 그리운 그 생활.
어쩌다보니 그걸 만들어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작년 11월부터 올 3월까지, 프놈펜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나에게는 약 100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 동안(내 나름) 급진적인 시도들을 해보고, 내 행복을 위한 최소한은 어디일지 관찰했다.
대원칙은 작게 살 것.
언제부터인지 무분별하고 잔학한 방식으로 내 생활을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필요한 편의와 즐거움에 비해서 과도하게 많은 생명과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나는 작아지고 싶었다.
작아지기 위해서 지키고자 했던 규칙들은
- 첫번째로, 요리를 그만 둘 것
- 두번째로, 혼식은 채식을 할 것
- 세번째로, 살림살이를 늘리지 말 것
- 네번째로, 전기 사용을 줄일 것
각 규칙을 실천하면서 나에 대해 알게 된 점, 느낀 점이 많았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브런치에 정리해볼 생각)
결과만 이야기 하자면 나는 오히려 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내 인생은 간소화되었고, 그만큼의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내 끼니로 소진되는 생명 총량은 현격히 줄어든 반면, 식사에 대한 만족과 행복감은 오히려 높아졌다.
내가 지닌 물건이나 내가 만들어 내는 쓰레기는 줄어들었고, 그만큼 누릴 수 있는 개인 공간은 늘어났다.
내가 소모하는 에너지는 확연하게 적었다.
(동료와 비교하면 내 전기세는 절반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100일의 프놈펜 생활을 마치고, 한국을 돌아오고 나니 내 생활은 빠르게 원복되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책이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작게 살기로 다짐한다.
이 책은 인간이 지구에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서 아주 친절하고 쉽게 말해준다.
그리고 그 변화의 최대 발원지인 우리 도시민들이 인지하고 있어야 할 책임의 무게를 짚어주고,
그 악영향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줄일 수 있는지도 제시한다.
모두에게 두루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인간이 지구를 망치고 있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사고가 너무 인간 중심적이라서, 우리가 지구의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인간이 변화시킨 지구는 인간 파멸적이어졌을 뿐이다.
동식물의 멸종도 인간 시야에 한정된 위험 신호일 뿐이다.
인간은 지구 생명의 다양성과 총량을 파악하지 못하니까.
인간을 포함한 다수의 종들이 멸종한 뒤로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지구의 생명력은 계속될 일이다.
지구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풍요로울 것이다.
다만 그 풍요는 인간 적대적 풍요이겠지.
나는 환경 보호 운동이 좀 더 솔직해지기를 바란다.
'우리 라이프스타일은 이대로 유지될 수 없어.'
'가장 먼저 멸종 위기에 처할 건 도시민이야.'
이렇게 연막 없이, 가식 없이 말했으면 좋겠다.
OECD 국가 도시민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우리는 너무 크게 살고 있다, 그뿐이다.
'취미생활 Hobby > 책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년에 읽은 책들과 추천하고 싶은 책들 (문학/인문/킬링타임/커리어/일상) (2) | 2023.12.31 |
---|---|
중동문학 대표 작가 및 작품 (중동/이슬람/아랍문학) (1) | 2023.01.21 |
[독서 리스트] 미국 독서 커뮤니티에서 뽑은 Top 100 2019~2020 (+점검 액셀 서식) (0) | 2022.09.01 |
국내에 소개된 중남미 작가와 대표작 총정리 v.0.0 (중남미 문학/라틴아메리카 문학/스페인어권 소설) (1) | 2022.06.24 |
리디페이퍼 AS 단돈 만원_물리 버튼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수리 후기 (2) | 2022.06.07 |